구속의 범위는 창조의 범위와 동일하다.창조주와 구속주는 동일한 분이시다.골로새서 1:14~20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5.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Noah’s Ark – Zac Kinkade Limited Edition Art참된 기독교는 '구조선 신학'(lifeboat theology)가 아니라 '방주 신학'(ark theology)이다.노아의 방주는 사람들만 구했던 것이 아니다.노아의 방주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다른 피조물들도 보존하였다.방주는 피할 구멍만 찾은 것이 아니라 땅에 복귀해서 다시 시작할 길을 찾았다.일단 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그 방주에 따고 있던 모든 사람, 모든 생물은 다시 돌아와서 땅을 회복시켜야 했다!인류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움을
우리가 이해하는 좋은 소식(복음)의 포괄적 개요는 아래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제시되어 온 이러한 총체적 비전이 어떻게 이렇듯 왜곡되어 왔을까?아래의 리차드 리들턴의 이야기를 더 경청해보자.... 인류가 땅을 다스리도록 "땅에 충만"하라는 사명을 받았을 때(창1:28), 이 생물학적 명령은 단순한 생식 그 이상을 의미했다.물론 땅을 다스리기 위해 인간은 늘어나야 했다. 그러나 이방 신전에 있는 형상이나 제의용 신상과의 유비에 따라, 하나님의 우주적 성전 안에서 "그분의 형상"이 되라는 인간의 소명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다시 읽으며 '다시 읽기의 놀라움'을 '다시' 깨닫고 있다.그 중 하나,창세기2장의 선언:"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2:18)"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이것은 사람이 아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상태가 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선언이다.아담은 혼자였고, 그 상태는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창조 가운데 유일하게 좋지 않은 것이었다.아담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끌어오신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가운데 자신의 외로움을